[新인터넷] 무선망개방(3)프랑스

 파리시내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연구원 시릴(30)은 요즘 출퇴근길 신문 대신 휴대폰을 보는 일이 많아졌다. 지난해 말 음성 통화, 무제한 문자 및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SFR의 39.9유로 결합 상품에 가입하면서부터다. 휴대폰으로 최소한의 통화만 하던 그는 요즘 무선 인터넷 포털 갤러리(www.gallery.fr)를 거쳐 블로깅, 채팅, 게임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접하고 있다. “휴대폰으로는 통화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는 콘텐츠가 많네요”라며 만족해한다.

 2005년 9월 문을 연 갤러리는 무선 인터넷 포털 사이트다. 인터넷 사업자와 콘텐츠 제공업자(CP)들이 의기투합해 사용자가 모바일 웹에 좀 더 편리하게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을 이통사에게 요구하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현재 1700개의 기업이 갤러리를 통해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통사들이 이 요구를 처음부터 흔쾌히 받아들인 것은 아니지만 이용자를 끌어들이면서 시장을 키우는 것이 결국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공감대가 이뤄졌다. 타협과 관용으로 상징되는 프랑스의 톨레랑스 철학이 치열한 경쟁법칙이 존재하는 모바일 인터넷 시장에서도 관철된 셈이다.

 ◇이통사, CP, 정부 모두 적극적=프랑스 통신위원회(ARCEP)에 따르면 지난해 말 모바일 인터넷 이용자는 이동통신 인구의 3분의 1인 1700만명 수준이다. 이용률이 80%를 넘는 일본이나 40%대에 머문 우리나라에도 못 미치는 미흡한 수치다. 프랑스는 원래 유럽 이동통신 시장 가운데에서도 가장 느리기로 유명하다. 데이터 매출 비중이 차지하는 비중도 10% 미만이다. 아직은 음성통화를 통해 매츨을 올릴 수 있는 잠재성이 크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이를 위해 시장이 개화하기도 전인 2001년부터 무선망 개방에 대한 기본 원칙을 세워놓았다. 시장은 더디게 움직여도 규제철학만큼은 사전에 탄탄히 다지고 가는 프랑스 특유의 치밀함을 엿볼 수 있다.

 장 프랑소와 ARCEP 홍보담당 이사는 “프랑스의 모바일 인터넷은 정책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며 “얼마나 좋은 서비스가 나오는지가 유일한 문제”라고 설명한다. ARCEP는 2001년부터 이동통신사가 모든 인터넷 사업자에게 모바일 인터넷 접근을 가능하도록 법안을 만들었다. 특정 CP들에게 접속을 차별화할 수 없도록 명문화한 것이다.

 이에 이통사업자들은 API를 포함해 CP들에게 플랫폼을 개방했다. 조르쥬 피날버 오렌지 부사장은 “망 개방을 통해 소비자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안 할 이유가 없다”며 “시장 요구에 의해 선택한 것”이라고 말한다. 무선망 개방 사안에서 시장이나 소비자 요구보다는 정부의 정책적 방침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우리나라 이동통신 서비스 구조와는 사뭇 다르다.

 ◇정액제로 소비자 손끝 유혹=물론 프랑스 이동통신 이용자들은 까다롭고 신중하다. 웬만해서는 서비스를 바꾸거나 첨단 단말기를 찾지 않는다. 철학과 문학을 얘기하고 논쟁을 즐기는 프랑스 국민의 특성상 휴대폰은 그냥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도구일 뿐 공을 들일 만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고 있다. 지난해 가을 SFR가 ‘일리믹틱스’란 모바일 인터넷 월정액제 요금을 내놓으면서 이용자들을 손짓하기 시작했다. 39.9∼46.9 유로를 내면 특정 시간대 음성통화는 물론이고 문자와 모바일 인터넷 무제한이 무제한 제공된다.

 특히 지난 4월 오렌지가 39.9∼59.9 유로에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텐’ 요금제를 출시하면서 경쟁이 불붙었다. 파리 소르본느 대학 근처 SFR 매장 매니저인 크리스는 “SFR 상품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무척 인기가 좋았다”며 “MSN과 블로그, e메일을 무제한으로 쓸 수 있다는 점에 고객이 상당한 매력을 느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곤자그 게임로프트 부사장은 “과거에는 소비자가 게임 하나를 내려받으려고 해도 요금이 얼마나 나올지 몰라 두려워했지만 정액제가 활성화되면서 이용률이 늘고 있다”고 기대했다.

 ◇게임 넘어서는 콘텐츠·서비스 개발이 관건=그러나 서비스와 콘텐츠 개발에 대한 고민은 깊다. ARCEP에서 정책이 아닌 서비스가 문제라고 얘기한 게 빈말은 아니다. 실제로 프랑스 내에서 유통되는 콘텐츠 중 90%는 여전히 모바일 게임이다. 벨소리·통화연결음 시장은 정체돼 있고 모바일 음악은 불법 복제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렌지가 모바일TV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도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프랑스 이통사업자들은 “진정한 무선망 개방은 우리만 플랫폼을 개방한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며 콘텐츠 사업자도 과감하게 콘텐츠를 모바일 플랫폼으로 개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파리(프랑스)=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

○ 신문게재일자 : 2008/07/10     
http://www.etnews.co.kr/news/today_detail.html?id=20080709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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